| 유토피아로 가는 휴게소
우리 팀은 ‘집’을 여성 퀴어의 삶과 창작을 들여다보는 하나의 출발점으로 삼습니다. 집은 흔히 안전하고 편안한 장소로 이야기되지만, 퀴어에게 집은 조금 더 복잡한 의미를 갖습니다. 원가족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숨겨야 했던 경험, 제도적으로 가족이나 신혼부부로 인정받지 못해 주거의 권리에서 배제되는 경험이 있는가 하면, 원가족을 넘어 선택한 가족과 동료, 자신이 살아가는 지역, 자신의 몸과 창작 공동체가 또 다른 ‘집’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퀴어에게 집은 무엇인가”, “나는 어디에서 나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가”, “세상에 유토피아가 없다면 우리는 어떤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를 함께 질문합니다.
세 명의 예술가는 이 질문을 각자의 창작 언어로 탐색합니다. 권세미는 퀴어 장르물 안에서 반복되어온 판타지와 클리셰를 실제 퀴어의 욕망과 경험으로 비틀며 새로운 이야기를 만듭니다. 강하늘은 여성과 퀴어의 몸에 남아 있는 기억과 감각, 말해지지 않았던 경험을 글과 희곡, 퍼포먼스의 언어로 옮깁니다. 유승연은 자신이 성장한 목동이라는 지역을 퀴어의 시선으로 다시 바라보며 장소와 가족, 정상성에 얽힌 기억을 사진과 글로 기록합니다. 이야기와 욕망, 몸과 언어, 지역과 기억이라는 서로 다른 출발점에서 시작하지만, 각자의 경험을 숨기지 않고 창작의 언어로 드러내고 다른 사람에게 건넨다는 점에서 세 작업은 서로 연결됩니다.
또 하나의 중요한 협업은 우리가 오리집에서 나누는 질문과 창작의 과정을 바깥으로 ‘발신’하는 일입니다. 퀴어 예술가와 퀴어를 다루는 예술 작업은 점차 늘어나고 있지만, 완성된 작품이 만들어지기까지 어떤 질문과 갈등을 지나왔는지, 무엇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지는 쉽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집합니다’와 ‘잘 끝났습니다’ 사이에 존재하는 시간을 중요한 창작의 일부로 생각합니다. 회의에서 나온 문장과 질문, 기획을 준비하며 생긴 고민, 예상대로 되지 않았던 시도, 서로의 작업에 영향을 받아 방향이 달라지는 순간들을 글과 사진, 카드뉴스와 SNS 기록으로 남기고 공유하고자 합니다.
또한 우리는 완성된 결과물뿐 아니라 ‘모집합니다’와 ‘잘 끝났습니다’ 사이의 과정도 중요한 창작으로 봅니다. 가칭 <회의가 끝나고 난 뒤>를 통해 회의에서 나온 질문, 작업을 준비하며 생긴 고민, 쉽게 해소되지 않는 문제들을 SNS와 카드뉴스로 발신하고 아카이빙합니다. “오리집은 누구를 기다리는가”,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은 안전한가”, “나는 왜 어떤 사람에게는 커밍아웃하지 않는가”, “SNS에 무지개를 넣을까 말까” 같은 질문을 바깥으로 던지며, 워크숍에 직접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과도 느슨하게 연결되고자 합니다.
이 질문들이 모이고 발신되는 장소가 ‘오리집’입니다. 오리집은 우리에게 완성된 유토피아라기보다 ‘유토피아로 가는 휴게소’에 가깝습니다. 일상의 규범과 시선에서 잠시 벗어나 자신을 지나치게 설명하거나 정체성을 덜어내지 않고 머물 수 있고, 그곳에서 다시 자신의 삶과 작업을 상상해볼 수 있는 장소입니다. 그렇다고 누구에게나 무조건 열려 있는 공간을 지향하는 것은 아닙니다. 안전과 환대 사이에서 어떤 문턱이 필요한지, 누구와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고 싶은지를 계속 질문합니다. 철새가 먹이와 기후, 온도가 맞는 장소를 찾아 머물고 다시 돌아오듯, 오리집 역시 이 공간의 언어와 질문에 공명하는 사람들을 기다리는 집이고자 합니다.
때문에 우리가 생각하는 ‘확장’은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을 공간 안으로 불러들이는 것과는 조금 다릅니다. 워크숍에 직접 참여하는 사람뿐 아니라 SNS에서 우리의 질문을 읽는 사람, 질문 하나에 자신의 이야기를 답해보는 사람, 기록을 공유하거나 이후의 활동을 기다리는 사람까지 서로 다른 거리에서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리집의 활동이 넓어진다는 것은 사람의 수만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공명하는 새로운 여성 퀴어·페미니스트 창작자와 잠재적인 동료들을 발견하고 여러 개의 느슨한 관계망을 만들어가는 일입니다.
협업의 과정과 결과는 오리집의 홈커밍데이 ‘웻랜드’에서 다시 만납니다. 여성 퀴어·페미니스트 창작자들과 워크숍 참여자, 오리집을 거쳐 간 사람들이 모여 숏폼 드라마와 희곡의 낭독·퍼포먼스, 사진과 글, 편지와 과정 기록을 함께 나눕니다.
‘웻랜드’라는 이름처럼 우리는 오리집을 여러 존재가 잠시 머물고, 서로에게 흔적을 남기고, 다시 각자의 자리로 이동했다가 돌아올 수 있는 하나의 습지 같은 생태계로 상상합니다. 이번 협업 역시 하나의 이상적인 ‘집’을 완성하는 일이 아니라, 서로 다른 몸과 기억, 욕망과 장소를 가진 사람들이 함께 머물며 우리가 살고 싶은 공간과 관계를 계속 발명해보는 과정입니다. 그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이야기와 사진, 글과 공연, 질문과 기록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닿아 새로운 창작과 관계를 불러오는 작은 신호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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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팀은 서울 양천구의 퀴어 페미니스트 창작공간 ‘오리집’을 중심으로 만난 여성 퀴어·페미니스트의 교차점에 있는 창작자들입니다. 연극, 영화, 사진, 글쓰기, 사운드, 퍼포먼스 등 서로 다른 장르에서 활동해왔고, 세대와 정체성, 창작 방식과 관심사도 조금씩 다릅니다. 그러나 여성과 퀴어의 삶, 관계, 몸과 장소처럼 우리 자신의 경험 가까이에 있는 이야기를 예술로 다루고 싶다는 점에서 서로 닮아 있습니다.
권세미는 젠더와 섹슈얼리티, 기술이 인간의 관계와 공연의 형식을 어떻게 바꾸는지 탐구하는 연극 연출가이자 작가, 연구자입니다. 서로 다른 사람의 경험과 아이디어를 연결해 하나의 창작 과정으로 조직하는 일을 좋아합니다. 강하늘은 텍스트와 사운드, 몸의 감각을 재료로 연극과 다원예술, 퍼포먼스를 넘나들며, 특히 여성과 소수자의 내면과 신체에서 출발한 언어를 무대 위에 불러내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유승연은 사진과 영상을 기반으로 지역 안에서 살아가는 여성과 소수자의 삶, 가족과 공동체의 모습을 기록하며, 주류의 시선에서 쉽게 지워지는 개인의 이야기를 가까운 거리에서 바라보고 남기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창작 언어를 가지고 있지만, 각자의 작업 안에 자신의 정체성과 경험을 숨기지 않고 가져오려 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우리는 매주 월요일 저녁 오리집의 따뜻한 불빛 아래 모여 여자와 퀴어, 예술과 삶에 대해 오래 이야기합니다. 완성된 작업뿐 아니라 아직 작업이 되지 않은 기억이나 욕망, 고민과 실패도 꺼내놓습니다. 누군가의 사진이 다른 사람의 글쓰기를 자극하고, 누군가의 공연 언어가 새로운 기록의 방식을 떠올리게 하는 식으로 서로의 세계에 자연스럽게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우리는 각자의 작업을 하나로 합치기보다, 서로 다른 세계를 유지하면서 상대의 작업을 가장 먼저 보고 읽어주는 ‘첫 번째 관객’이 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오리집 역시 공간을 제공하는 기관이 아니라 함께 질문하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창작의 동료로 존재합니다.
우리에게 오리집은 자신을 지나치게 설명하거나 정체성을 덜어내지 않고도 예술가로 머물 수 있는 곳입니다. 밖에서는 쉽게 말하기 어려웠던 경험과 취약함을 꺼내놓을 수 있고, 그것이 누군가에게 읽히고 다시 의미화되면서 새로운 작업의 씨앗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 팀은 결과물만큼이나 함께 이야기하고, 서로의 작업을 바라보고, 각자의 변화와 좌충우돌하는 과정을 기록하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서로의 언어를 다른 사람이 다시 읽어주고, 각자 혼자였다면 가지 않았을 방향으로 조금씩 움직이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협업에 가깝습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분야와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지만, 함께 있을 때 조금 더 솔직하고, 조금 더 과감하고, 무엇보다 작업이 더 재미있어지는 팀입니다. 서로의 작업을 잘 보고 오래 듣고, 가장 먼저 응원해주는 일을 꽤 잘합니다.
“사랑이 우리의 재능이라.”
우리는 그 말을 믿고 싶어하는 사람들입니다. |